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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alth/부자마인드셋

책3.당신도 초자연적이 될 수 있다.<제11장 공간-시간 그리고 시간-공간> (조디스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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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람, 대상, 공간,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3차원 우주에서 살고 있다. 이 우주의 대부분은 입자와 물질의 차원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이것들의 형태, 구조, 질량, 밀도를 경험한다.

 

 

 

예를 들어 내가 얼음조각이나 휴대폰,혹은 애플파이를 당신 앞에 둔다고 해도 감각기관이 없다면 당신을 그것들을 경험할 수 없다. 물리적 세상에서는 감각들이 있어야 경험이 가능하다.

 

 

 

 

천체물리학에 따르면, 우주라고 알려진 이 3차원 세상속의 공간은 무한하다. 우리가 보는 하늘은 우주의 한 조각일뿐이다. 그것은 우리 눈에 무한해 보이지만 사실 무한하다는 것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이상이다. 다시 말해 공간-시간 세상에서 공간은 영원하다. 즉 끝이 없이 계속 이어진다.

 

 

 

그렇다면 시간은 어떨까?

 

 

 

우리는 보통 몸으로 공간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한다. 

 

 

 

부엌으로 가기 전 의자에 앉아서 당신이 앉아 있는 곳과 연결지어 부엌을 의식 할ㄸ, 당신은 자신이 앉아 있는 곳과 부엌이라는 의식의 두 지점 사이의 분리를 경험한다. 의식의  그 두지점 사이의 공백을 없애려고 당신은 몸을 움직여 그 공간을 통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면 두 지점 사이의 공간 혹은 거리가 클수록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까지 가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그렇게 의식의 두 지점 사이가 분리되어 있다면 의식의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이동할 때 공간의 붕괴가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 공간의 붕괴의 결과로 우리는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즉 의식의 두 지점사이의 공백을 없앨 때 시간이 발생한다. 

 

 

 

당신이 어떤 굼과 목표를 갖고 있다면, 지금 순간 당신이 있는 곳과 그 꿈이 현실이 된 미래 사이에도 분리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할수 있다.

 

 

 

1. 3차원의 현실에서 움직이려면 감각이 필요한다.

2.현실을 확인하기 위해 감각을 이용하면 할수록 그만큼 분리를 경험한다. 

 

 

 

3.이 3차원 현실은 대부분이 감각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시공간은 항상 모든 사람, 모든사물, 모든장소, 모든 몸으로부터 분리된 경험을 만들어낸다. 

 

 

 

4.모든 물질은 시공간 속의 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것을 물리학에서는 국소성이라고 한다. 

 

 

 

 

어떤 대상이 공간을 통해 움직이는 데 걸리는 시간을 측정하는 것이 뉴턴물리학의 기반이다.

 

 

 

공간-시간은 예측할 수 있는 기지의 결과들, 물질, 우리가 살고 있는(무한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는)3차원 우주에 기초한 뉴턴식 물질 세상이다. 

 

 

 

시간-공간은 이와 반대로 미지의 끝없는 가능성들, 에너지, 역시 우리가 살고 있는 (무한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는) 다중우주에 기초한 비물질적 양자세계이다.

 

 

 

 

물질현실을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감각을 이용하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히 자신을 시공간 안에서 주변의 모든 것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몸으로 규정한다. 

 

 

 

 

그런 규정을 자꾸 하다보면 몸이 우리의 정체성이 된다. 

 

 

 

그리고 특정 시공간들에서 이런저런 사람, 물건, 대상들과 다양하게 영향을 주고받다 보면 그런 정체성이 우리의 성격이 된다. 

 

 

 

외부환경과의 이 같은 상호작용이 장기기억을 만들고, 이 기억들이 우리를 형성한다. 

 

 

 

 

이 과정을 우리는 경험이라 부르는데 우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인생의 경험들이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매일 인식하는 물질적인 대상, 사물, 사람, 장소들을 하나의 패턴으로 인식하고 이 패턴들의 인식을 기억이라 부른다.

 

 

 

 

자아가 과거의 경험에 대한 기억으로부터 만들어진다면, 이 때 기억은 기지의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3차원 세상의 대부분은 기지의 것에 기초하는 셈이다. 

 

 

 

 

우리가 주의 를 집중하는 곳이 바로 이 기지의 것들이다. 

 

 

 

외부 세계의 모든 물질적인 것들을 과거 경험에 대한 기억들에 정렬시킬 때 우리는 그것들이 익숙하다고 생각하다. 그 물질적 현실을 뇌 속의 기존 신경네트워크와 연결시킨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패턴인식이라 부른다. 과거의 렌즈를 통해 현실을 인식할 때 보통은 바로 이 패턴인식의 과정을 밟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단지 이 차원에서 물질주의자로 살아가는 정도가 아니라 이 3차원세게에 노예처럼 구속되어 살고 있다고 해야할것이다. 

 

 

 

이는 우리 스스로를 특정 시간대의 환경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몸으로 규정해 왔기 때문이다. 

 

 

 

양자적 관점에서 볼때 우리는 가능성(에너지)의 비물질적 파장이 아니라 물리적 입자(물질)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3차원 현실에 몰두하고있다. 

 

 

 

 

스트레스로 균형 상태가 깨지면 우리 몸은 주변의 보이지 앟는 전자기장에서 에너지를 끌어와 화학물질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이 때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은 우리의 감각을 물질 및 기지의 것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성질을 갖고 있다. 

 

 

 

몸을 감싸고 있던 에너지장이 쪼그라듦에 따라 우리는 더더욱 에너지가 아닌 물질이라고 느낀다. 

 

 

 

 

사실 보이지 않는 자기장의 진동이 느려지고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우리 몸은 점점 더 물질화 되고 둔해진다. 

 

 

 

 

짧은 시간인 경우에는 위험이나 위기를 느끼고 포식자가 모퉁이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고 두려움을 느껴도 상관없다. 사실 투쟁 혹은 도주 반응은 우리가 진화하는데 주춧돌과도 같았다 

 

 

 

 

그 반응 상태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고, 위험하다고 감지되는 대상으로 우리의 초점을 좁혀준다. 그때 신피질이 불을 켜고 깨어난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를 보호해 주던 진화적 특성이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면 늘 극도의 경계심속에서 강박적으로 시간에 집착하게 된다. 

 

 

 

 

외부세계가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모든 초점을 외부세계에 두고 살게 된다. 

 

 

 

이제 외부세계가 내면세계보다 더 실재처럼 느껴지므로 우리는 외부세계에 있는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 집착한다. 

 

 

 

이제 우리의 모든 주의와 에너지는 3차원의 물질세상에 붙들리고 감정상태는 우리의 현재 현실을 끊임없이 재확인하는 상태에 빠진다. 

 

 

 

 

 

우리는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에 감정적으로 집착한다. 그 현실을 정말로 바꾸고 싶어 함에도 말이다. 

 

 

 

 

 

애초에 자신의 에너지를 잘못관리함으로써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세상의 노예가 되고 과거에 기초해 미래를 예견하려 들게 된다. 

 

 

 

 

게다가 생존모드에 있을 때는 미지의 것 혹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은 무섭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생을 진정으로 바꾸고 싶다면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아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말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존모드에 살며 자신의 감각을 가지고 현실을 규정하려고 할수록 우리는 새로운 미래와의 분리를 더 많이 경험한다. 의식의 한 지점으로서 현재 우리가 있는 곳과 의식의 다른 한 지점으로서 우리가 원하는 곳 사이에는 아주 긴 간극이 놓여있다. 더구나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날지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예측하며 그일에 집착하는 것이 그 간극을 더 크게 만든다.

 

 

 

 

그런 생각과 예측은 이미 알고 있는 것에 기초하기 때문에 아직 모르는 것이나 새로운 가능성이 인생에서 꽃필 여지는 사라진다. 

 

 

 

 

생존모드에 살면 살수록 원하는 것을 얻는데 더 많은 시간이 든다. 물질이 되어 물질을 바꾸려 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있는 곳과 있고 싶은 곳 사이에 공간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뚜렷한 분리가 있기 때문이다.

 

 

 

 

뉴턴 물리학고 이 3차원세상에 대한 이해 안에서 우리는 일생의 대부분을 어떤 사람이 되고자, 어떤 몸과 어떤 물건을 갖고자, 어딘가를 가고자, 그리고 언젠가 어떤 일을 경험하고자 애를 쓰면 외부세계에 집중하며 살고 있다.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는 결핍을 느끼고, 그런 결핍과 분리는 우리를 이원성과 양극성의 상태 안에서 살아가도록 만든다. 

 

 

 

 

갖고 싶어 하는 것은 나쁜것이 아니다. 이런 욕구가 있기 때문에 창조도 가능한 것이다. 다만 우리가 미래에 원하는 것과 분리되어 있음을 경험할 때 우리는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꿈꾸다가 그것을 갖기 위해 직선상의 시간 위에서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해나가기 시작하고 이렇게 돈, 건강, 사랑 등등 을 얻기 위해 즉 물질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물질로서 물질에 집중한다면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소요될 것이다. 

 

 

 

 

 

구하던 것을 마침내 얻으면 그 창조의 결실이 주는 달콤한 감정이 이전의 결핍 감정을 말끔히 씻어줄 것이다. 새 직장을 구하면 안정감을 느끼고 짝이 나타났다면 사랑과 기쁨을 느낄 것이며 건강을 되찾았다면 다시 온전해졌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데 이런 상태에 살때 우리는 우리 밖의 무언가 혹은 누군가가 우리 내면의 감정을 바꿔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외부에서 실현된 일 덕분에 그 결핍을 채웠다고 느끼면 우리는 그렇게 결핍을 채워준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집착에 가까운 주의를 보낸다. 

 

 

 

 

 

이런 원인과 결과의 과정이 새로운 기억을 만들고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는 발전을 이룬다. 

 

 

 

 

원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는 데 너무 오랜시간이 걸리는 것 같으면 우리는 더 많은 결핍을 느끼는데, 그것은 우리가 만들어 내고 싶은 것과의 분리가 훨씬더 커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 결핍, 좌절감, 조바심, 분리의 감정상태가 원하는 꿈과의 거리를 더 늘리고 그 꿈이 실현되기까지 시간도 더 늘린다. 

 

 

 

 

 

양자장은 물질적인 모든 것을 통합하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와 정보의 장이다. 이 비물질적인 장이 모든 자연법칙을 조직하고 연결하고 지배한다. 

 

 

 

5차원의 양자장은 공간보다 시간이 더 많은 차원이다. 다시 말해 양자장의 차원에서는 시간이 영원하다. 

 

 

 

외부세계의 어떤 장소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로부터 주의를 거둬들여 더이상 우리 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시간과 할 일들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는 아무 몸도 아니고 아무 사람도 아니고 아무 사물도 아니며 아무 곳 아무 시간에도 있지 않게 된다. 

 

 

 

 

우리의 몸, 정체성, 성별, 질병, 이름, 문제,관계, 고통, 과거 등등 과의 연결을 끊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자아를 넘어선다는 것의 의미가 바로 이것이다. 이때 우리의 의식과 자각이 물질 세상에서 통합장의 비물질 세상으로 옮겨간다.

 

 

 

 

즉 우리는 사람, 사물, 장소, 계획, 해야 할 일 등등의 외부세계에서 벗어나 우리 주의를 에너지, 진동, 주파수, 의식의 내면 세계로 돌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뇌의 서로 다른 부분들이 조화롭게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뇌통합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자신이 더 온전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우리의 심장도 열려서 더 규칙적으로 박동하기 시작하고, 따라서 더욱 일관성 있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이 평상시와 달라지기 때문에 뇌는 알파파와 세타파 상태로 들어가고 이에 우리는 자율신경계와 연결된다. 

 

 

 

자율신경계는 활성화되면서 심장, 뇌,몸, 에너지장에 일관성과 온전함을 더하면서 질서와 균형을 되찾아준다. 

 

 

 

이런 상태가 되면 우리는 양자장(통합장)과 연결되기 시작한다. 

 

 

 

 

양자장(통합장)에서는 의식의 두 지점 사이에 분리가 없다. 하나임 혹은 단일의식의 세계이다. 

 

 

 

3차원 현실에서는 공간이 무한한 데 반해 양자장세상에서는 시간이 무한하다. 

 

 

 

시간이 무한하고 영원하다면 그것은 직선적일 수가 없다. 과거와 미래와의 분리가 있을 수 없다. 

 

 

 

과거 혹은 미래가 없다면 모든 것이 바로 지금 이 영원한 현재 순간에 벌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이 시간-공간 현실에서는 시간이 무한하기 때문에 시간을 통해 움직일 때 우리는 공간들을 경험한다.

 

 

 

물질 세상에서는 공간을 가르며 움직일때 시간을 경험하지만 에너지와 주파수의 비물질 양자세상에서는 그 반대이다. 

 

 

 

 

시간-공간 세상에서는 에너지 주파수 혹은 진동의 속도가 빨라지거나 늦어짐을 자각할때,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혹은 한 차원에서 다른 차원으로 갈 수 있다. 

 

 

 

우리가 공간을 붕괴할 때 우리는 물질 현실 속의 시간을 경험한다. 우리가 시간을 붕괴할 때 비물질현실속의 공간들 혹은 차원들을 경험한다. 

 

 

 

각각의 주파수는 모두 정보 혹은 의식의 한 수준을 전달하고 그 정보나 의식을 자각할 때 우리는 그것을 다른 현실들로 경험한다. 

 

 

 

시간을 통해 옮겨갈 때 우리가 영원한 현재 순간 속의 다른 차원들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가 완전하게 현재 순간에 존재해서 과거도 미래도 없고 그저 긴 현재만 있게 될 때 우리는 이 5차원의 양자세상으로 들어간다. 

 

 

 

이제 물질에 대한 모든 주의를 거둬들였기 때문에 우리의 자각은 물질영역 너머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정보가 담긴 여러 주파수들을 알아차릴 수 있으며, 그 주파수들을 통해 다른 미지의 차원들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므로 감각 너머의 영역에서 의식으로서 통합장의 에너지속으로 들어간다면 많은 차원의 현실들을 경험할 수 있다. 

 

 

 

이 시간-공간의 현실에는 가능한 공간들 혹은 차원들이 모두 함께 무한한 시간 속에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가능성들, 미지의 것들, 새로운 잠재적 현실들이 끝없는 시간 속에 다시 말해 모든 시간 속에 통합되어 존재한다.

 

 

 

 

그래서 개별적인 시공간이 사라지고 모든 시공간이 함께 존재한다. 즉 양자장(통합장)의 5차원 비물질 현실은 모든몸, 모든 사람, 모든 사물, 모든곳, 모든시간에 대한 정보를 무한한 수의 주파수로 가지고 있다. 

 

 

 

 

물질 및 분리의 상태로부터 멀어질수록 우리는 온전함과 질서, 사랑의 정도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에너지가 더일관성 있고 질서정연할수록 그것이 띠는 정보는 점점 더 사랑에 가까워진다. 

 

 

 

양자장은 자연의 모든 법칙을 지배하고 조직하고 통합하며, 빛에 형태를 줌으로써 에너지에 질서를 부여한다. 

 

 

온전함 상태에서 창조할 때는 단지 알고 관찰하기만 하면된다. 

 

 

 

온전함의 상태에 있는데 뭔가를 원하고 시도하고바라고 강요하고 예측하고 싸우고 희망할 필요가 없다. 결국 뭔가를 바라는 것은 구걸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바로 꿈을 현실로 옮기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제더큰 주파수 혹은 에너지가 우리의 자율신경계를 타고 움직인다. 바로 온전함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에너지이다. 그 결과 우리는 더 신성해진다. 그리고 그 주파수가 크면 클수록 이 3차원현실에서 그것이 전개되는 시간은 더 짧아진다. 

 

 

 

당신은 이제 의식이 되어 하나임의 영역에 있고, 그곳에는 분리가 없기 때문에 시간이 영원하다. 그리고 시간이 무한하면 공간도 무한하고, 가능한 차원들, 경험할 수 있는 현실들도 무한해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자신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든 그곳에 갈 것이고, 자신이 누구라고 생각하든 그 사람이 될 것이다. 

 

 

 

사실 모든 생각들의 영역에 모든 것이 생각으로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창조하려고 시도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생각을 알아차리고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그 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아무사람도 될수있고 아무곳에도 갈수있고 아무 사물이든 가질수 있고 아무 시간에도 존재할 수 있다. 바로 그 때 초자연적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통합장을 모른다면 당신에게는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그리고 무엇을 봐야 하는지 알수록 그것에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 그럴수록 그것을 더 깊이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이 당신을 바꿀 것이다. 

 

 

 

 

배우는 행위 자체가 더 큰변화를 부르고 더 풍부한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새로운 것을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면 똑같은 것만 경험하게 될 것이다. 지식은 경험의 진화를 알리는 전령사 같은 것이다. 

 

 

 

태어날때부터 우리는 에너지가 아니라 물질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훈련받는다. 현실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각이 필요하다고 믿도록 교육받는다. 

 

 

 

 

따라서 보고 듣고 느끼고 만지고 냄새맡고 오감으로 느낄 수 없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이때문에 사람들은 에너지, 정보, 파동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물질, 대상, 입자에만 대부분 집중하며 살아간다. 

 

 

 

통합장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더 많이 자각할수록 그것은 확장된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의 일부가 된다. 

 

 

 

통합장을 자각하고 알아차리고 경험하고 느끼고 그것과 교류하고 매 순간 함께 할 때 통합장이 우리 현실에 나타나 우리 일상에서 펼쳐지기 시작한다. 뜻밖의 일, 동시성, 기회, 우연의 일치, 행운,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게 되는것, 경외의 순간 같은 미지의 형태로 나타나서 펼쳐진다.

 

 

 

 

통합장은 우리 안과 밖 어디에나있는 신성하고 사랑 가득한 지성이자 지성 가득한 사랑이다. 그것에 주의를 둘때 신성은 우리 삶에 함께 할 것이다. 

 

 

 

 

통합장을 경험할 때 우리는 말 그대로 그것이 되고, 이 통합장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갈 수록 탐험하고 경험할 것이 점점 늘어난다. 통합장을 경험할 때마다 뇌의 회로를 풍성하고 정교하게하며 신성을 더 많이 구현하게 된다.

 

 

 

질병이란 주파수가 낮아지고 일관성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몸이 일관성있고 고양된 주파수를 경험하는 순간 그 에너지가 몸의 진동을 일관성 있고 질서정연한 상태로 끌어올린다.

 

 

 

 

우리가 분석하고 생각하기를 멈추고 통합장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면 자율신경계의 탁월한 지성이 전면에 나서서 질서를 바로 잡는다. 또한 자율신경계가 통합장에서 나온 더 높은 주파수와 함께 더 새롭고 자가 조직능력도 더 탁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우리는 강렬한 사랑의 느낌과 함께, 살아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깊은 희열, 고양된 자유의 감각, 형언할 수 없는 축복감, 삶에 대한 경외감, 더할 수 없는 감사를 느끼며 진정한 힘에 대한 겸허한 감각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늘 존재하고 있던 현실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되고 이전에는 우리 뇌에 신경회로가 갖춰지지 않아 인식할 수 없던 삶의 전체 스펙트럼을 보게 된다.

 

 

 

 

당신의 의식이 더 큰의식과 하나가 되도록 허락하고 지성 가득한 사랑에 온 몸과 마음을 내맡겨라. 

 

 

 

미지의 것을 신뢰하고 자아의 제한된 측면들을 계속해서 내려놓고 더 큰 자아에 합류하라. 

 

 

 

모든것이 되기 위해 자신을 버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라.

 

 

 

일관성있는 에너지의 깊고 무한한 바다의 품에 편안히 안겨라.

 

 

 

하나임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라

 

 

 

통제하고 싶은 욕구를 끊임없이 떠나보내라

 

 

 

점점 더 큰 수준의 온전함을 느껴라

 

 

 

하나의 의식이 되어 당신 주변의 통합장에 매순간 집중하고 자각하고 주의를 기울이고 경험하고 함께 하고 갈수록 더 많이 느껴라, 자각이 3차원 현실로 돌아가지 않게 하라.

 

 

 

 

이 규칙들을 제대로 지킨다면 감각은 더이상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감각을 이미 초월하고 자각이 되었을테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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