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독-스티븐스필버그 / 개봉-1994.03.05/미국/ 드라마,전쟁/ 15세관람)
1.줄거리
이 영화는 끔찍했던 유태인 학살의 독일 나치 정권을 배경으로 합니다. 무차별적인 나치 정권의 유태인 학살과 탄압으로 수많은 유태인들은 집과 재산을 강제로 빼앗기며 학살당하게 됩니다.
이때 독일인인 쉰들러는 어차피 독일군에 의해 잡혀가 살해당할 유태인을 빼돌려 그의 공장의 인력으로 사용하게 됩니다.어차피 그가 아니라면 쓸모없는 직군으로 분류되어 죽게 될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입니다.
예를 들면 노인이라던가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이라던가 당장 전쟁에 도움 될 인력이 아니라면 나치 정권은 무차별적으로 유태인을 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그릇을 만드는 공장을 세워 그는 공짜이다시피한 노동력으로 떼돈을 벌게 됩니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쉰들러의 공장은 무차별적인 유태인 학살 가운데 피난처가 됩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돈과 여자에 취해 지내고 있는 쉰들러는 점점 유태인 학살의 강도가 심각해 짐을 느끼고 문제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유 없이 유태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이, 노인, 여자 할 것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짐승 다루듯 다루며 너무 쉽게 죽이고 학살하는 모습에 쉰들러는 이들을 구해내려고 마음을 먹습니다.
바로 유태인을 이용해서 번 돈으로 말입니다. 죽을 때까지 먹고 살 만큼 넘치는 돈을 벌었지만 결국 유태인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져 독가스에 의해 살해될 것을 알게 되고는 쉰들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이들을 구해내려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명목은 본인이 새로 만드는 탄피 관련 공장에 유태인 노동력을 사용하여 돈을 벌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쉰들러는 돈을 벌려는 목적이 아닙니다.
이 무차별적인 인류학살의 현장에서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가진 전 재산을 털어서 말입니다. 결국엔 모든 방법과 돈을 동원해서 쉰들러는 1100명의 목숨 값을 지불하고 이들을 본인의 새로 만든 탄피 공장으로 무사히 데려오게 됩니다.
시간이 지나 전쟁은 끝이 나고 쉰들러는 전쟁범으로 전쟁이 끝나는 자정을 기점으로 도망을 쳐야 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그가 구해준 1100명의 유태인들은 그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며 1100명의 유태인의 서명인 담긴 문서를 건네며 영화는 막을 내리게 됩니다.
2.총평
역사적으로 큰 사건인 나치 정권의 유태인 학살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운데 쉰들러처럼 유태인을 구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많을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쉰들러는 원래부터 선한 의도로 유태인을 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전쟁 상황을 이용해 부정한 돈을 벌려고 했고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는 도대체 어떤 생각이었는지 유태인을 죽이는 것보다 그들의 노동을 이용해서 무엇인가 생산적인 일을 해내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무차별적으로 아이, 여자, 노인 할 것 없이 말살을 하려고 합니다.
마치 '유태인은 없어져야 해' 라는 지극히 유아적인 발상으로 말입니다. 이때 비로소 쉰들러는 더 이상은 참지를 못합니다.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성이라는 것이 어디까지 극도로 잔인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 나치 정권의 유태인 학살사건이라 생각합니다. 근데 결국 히틀러도 본인이 만든 거짓말과 상황에 빠져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유태인은 사람이 아니다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세뇌시켰고 결국 본인이 자기의 거짓에 빠져든 것입니다. 어처구니없게도 많은 독일인들도 계속 듣다 보니 그것을 믿고 따르게 되고 결국 이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말이라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인지를 다시금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거짓말도 계속 반복하면 현실이 되니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르게 된 것입니다.
다만 이것을 더 좋고 선한 방향으로 했다면 좋았을 것을 히틀러는 너무나도 잔인한 방향으로 이것을 사용한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히틀러와 나치의 정권 모두가 참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쉰들러는 기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 선한 마음이 어느 순간에 발현이 되는지는 다를 수 있으나 아무나 그러한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 그런 용기 있는 선택을 하지는 못합니다.
보통의 인간은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었어 내가 하기엔 역부족이었어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강의를 들으면서 배운 것이 있습니다. 내가 하지 않아서 생긴 일도 내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쉰들러는 이 말을 지켜준 고마운 위인인 것 같습니다. 해야 되는 일을 하는 것 말고 할 수 있었는데 안 해서 생긴 일도 내 책임이라는 아름다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준 따뜻한 사람임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한번 죽는 인생이라면 용기 있게 당당하게 본인의 이름을 걸고 그렇게 살아야겠습니다. 죽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말입니다. 또 한 번 이렇게 마음을 먹게 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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